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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호황인 우리네 불황형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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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호황인 우리네 불황형 소비
작성자 양선희 작성일 2016.08.31 조회수 4346  
 
한국 사람 술 많이 마시는 거야 새로운 얘기도 아니지만 요즘은 거의 ‘술 마셔 애국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술에 붙는 세금인 주세로 거둔 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넘었다. 대부분이 맥주·소주·탁주 등 서민주에서 걷혔다. 또 통계청의 올 2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가계가 소비를 확 줄이는 와중에도 술과 담배 지출은 크게 늘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는 세금 등 고정지출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돈이 100원이면 70.9원(평균소비성향)만 쓰면서 지갑을 꽉 닫아버려 이 통계 집계 후 가장 낮은 소비성향을 보였다. 사교육비·식비·의복비 등 사적 소비가 다 줄었다. 다만 술·담배 지출은 전년 대비 7.1% 늘었다.

이 정도로 ‘술에 의존하는 사회’라는 건 지나친 비약이지만 그래도 ‘왜?’를 분석하고 ‘어떻게?’를 고민할 때는 된 것 같다. 먼저 ‘왜?’ 주거비와 생활물가 부담은 커지는데 미래는 불투명하고 평균수명도 길어지면서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출을 줄이고 저금을 하면서도 이런 팍팍한 현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는 담론이 일반적이다.

한국식 불황형 소비의 한 형태로도 풀이된다. 불황형 소비는 적은 지출로 즐거움을 찾는 형태의 소비인데 영화 소비가 는다든지 립스틱이 잘 팔린다든지 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우리 소비가 불황형 행태를 보인 지는 좀 됐다. 대표적으로 1만원 안팎으로 두 시간 정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영화 소비. 지난해 한국인 일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4.2회로 미국(3.6회)과 프랑스(3.1회)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연장선에서 술 소비 역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에만 지갑을 연다는 분석이다.

한데 이런 경제적 분석은 뭔가 한 끗 부족하다. ‘사람들은 왜 없는 돈을 쪼개서 영화를 볼까’ ‘왜 식비는 줄이면서 술은 더 마실까’ 이런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요즘 술 매출이 느는 건 여성의 음주와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엔 술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면, 요즘은 사회관계를 단절하고 혼자 즐기는 오락으로 변모하고 있다.

결론은 어쩌면 ‘재미’ ‘즐거움’인지도 모른다. 우리 불황형 소비에서 읽어야 할 건 돈 없고 삶은 팍팍해도 즐거움을 찾으려는 욕망은 크고, 우리 사회에 부족한 건 돈이 아니라 ‘재미’일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지자체 등도 돈 들여 이벤트와 축제를 벌이며 재미를 찾지만 일회성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일회적이고 소모적 재미에 몰입했던 건 아닐까. 우리에게 경제적 여유가 생긴 이래 어느덧 노는 것, 보는 것, 소비하는 것 등 돈 드는 재미에 너무 갇혀 있어 소비하는 재미밖에 상상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불황에다 삶이 팍팍할수록 경제만 보면 더 답답해진다. 이젠 경제에서 벗어나 우리 공동체가 장기적이고 축적할 수 있는 재미를 찾는 방안을 서로 제안하고 실행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선 나는 ‘성인학습사회’를 제안한다. 배우고 공부하면서 지식과 지혜가 확장되는 걸 느끼는 것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학습의지가 낮다는 건 세계적으로도 입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인역량조사 결과 한국 성인들의 학습의지는 2.9로 회원국 중 꼴찌였다. 핀란드(4.0), 미국(3.9) 등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다.

성인학습사회는 나의 독창적 제안은 아니다.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북유럽에선 성인들의 공부 문화가 발달했고, 이들 나라가 포함된 북유럽협의체는 이제 ‘성인의무교육’도 도입하려는 중이다. 이 문제를 올 11월 협의체 회의에서 논의한단다. 저성장과 경제적 격차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현실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길을 경제 성장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비경제적 즐거움과 대안을 찾는 노력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양선희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양선희의 시시각각] 술은 호황인 우리네 불황형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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