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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코리아골프&아트빌리지 회장 - 국제신용대상 받다.
작성자 김태진기자 등록일 2009.12.07 조회수 3674

“사재 털어가며 지킨 신용 재기의 가장 큰 재산 됐죠”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 번 사업에 실패했지만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신용을 지켰기 때문이죠.”

이동준 회장이 미국·중국 등 해외 골프리조트 조감도를 들고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이동준(69) 코리아골프아트빌리지 회장이 한국중재학회(회장 김석철 경원대 무역학과 교수)가 주최하는 제15회 국제거래신용대상을 수상한다. 시상식은 1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다.

그는 1970년 당시 고가로 거래됐던 형 사무실의 백색 전화를 담보로 무역회사 ㈜유성을 설립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오퍼상이었지만 국내 처음으로 중동에 철강재를 수출했다. 당시만 해도 포스코가 철을 생산하기 이전이다. 그는 이후 승승장구, 8년 만에 1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30대에 대통령표창 산업훈장 등 정부 훈장을 세 번이나 받았다. 77년에는 옛 동독의 철강을 중동으로 수출하는 3자간 무역에 나서 당시 최대 규모의 신용장인 1500만 달러를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에 열기도 했다.

새옹지마라고 할까. 동독 해운업체의 사기로 오히려 거래선에 100만 달러를 물어주게 됐다. 이 회장은 “당시 꽤 돈을 모았기 때문에 재산을 정리해 미국으로 도망갈까 고민도 했다”며 “하지만 좌우명이었던 ‘신용’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갚았고 훗날 중동 바이어와 두터운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퍼상은 망하기도 쉽지만 신용만 잃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다”며 “이때 도망갔으면 지금 미국에서 식당이나 수퍼마켓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역경을 딛고 유성은 지금까지 30억 달러가 넘는 철강재를 수출했다.

그는 중동 바이어의 도움으로 곧바로 재기해 2년 만에 1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지만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수출자재를 조달하던 동명목재가 해체되면서 또다시 거액의 손해배상 요구에 걸렸다. 더구나 수출대금으로 잡았던 20억원 담보도 받을 길이 없어졌다. 이때도 사재를 털어 손해배상을 해결하고 신용을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실명 장애인을 돌보던 실로암을 후원, 100명의 개안수술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전화위복으로 83년 동명목재 담보 금액이 나왔고 당시 ‘하늘의 별 따기’로 불렸던 골프장 허가권도 얻어냈다. 제2의 창업 격으로 리조트 사업에 나서 경기도 용인에 골드·코리아컨트리클럽을 잇따라 개장했다. 이 회장은 리조트 사업에 대해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 다시 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건강이 지속되는 한 계속 현장에서 뛰겠다”며 “노인 건강과 휴양을 겸한 헬스케어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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